1. 배운다(學)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듯이 새로운 지식을 얻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윤리학의 의미와 실천을 내포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學의 의미는 본받음이며,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지만 깨달음에 먼저와 나중이 있으니, 나중에 깨닫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깨달은 사람의 행위를 본받아야만 선을 깨우쳐 본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하니..
TDS (Teach Driven Study)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 익힌다(習)는 것은, 어린 새가 날아가기 위해 날개짓하는 그림의 형상을 딴 글자라고 합니다. 어린 새가 날아보려고 날개짓을 되풀이하느라 숨찬 입김을 내뿜는 의미를 지니니, 이 '習' 역시 단순히 '익힌다'는 의미보다는 '실천한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3. 기쁘다(說)는 것은, 두번 째 구의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에 있는 즐거워하다(樂)와 對를 이룹니다.
說은 悅과 같은 의미로,.. '마음 속에 꽉 찬 기운으로써의 기쁨'을 의미합니다.
樂은 '손으로 흔들어 그 소리로 신을 즐겁게 해주던 요령이라는 악기를 형상화한 글자'로 신이나 다리가 주체하지 못
할 정도로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기쁨은 내면적이고 즐거움은 발산이 위주이니 외면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늘 '입'으로 외우는 이 句에 대한 해석으로는,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가 보편적인 것같습니다. (이 구절 하나쯤은 외워줘야~)
하지만 위와 같이 풀어(解) 곰곰히 읽어(讀)보면 그리 간단한 뜻은 아니지요.
이윤호 교수의 말씀을 빌자면,
'배우고(學而)
그것을(之)
때에 맞춰서(時)
익히고 실천하니(習)
또한(亦)
기쁘지 아니한가(不說乎)'
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공자의 본 뜻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 걸까요??
나의 배움이 삶을 통해 실천(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으로 드러나고, 또한 다른 사람의 모습(=실천)을 통해서 또 배우는.. 그런 전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되는 이치입니다.
그러하기에 배움이 바로 삶의 '기쁨'을 주는 요소가 되는 것이지요.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중에서, 내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공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배움의 대상이 아직 내 안에 내재화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의 깨달음 :
배우고 익히는 공부.. 그것은 귀로 들어와 머리에 저장되며 나의 오장육부를 통해 소화된 후에 온 몸으로 드러나는 메카니즘을 갖는 것이더랍니다..
더불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이에서도 동일한 원리로 작용하는 프랙탈 구조를 갖춘 네트웍크였더랍니다.
어느 단계에서든 이 네트워크 구조가 깨질 때.. 왜곡된 권력구조가 탄생하게 되는..
검산해볼까요?
공부를 하면서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