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3.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무입니다.
들어가며
요리책에는 요리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철학책에는 ‘이 세상과 인간은 무엇인가?’‘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역사책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렇듯 모든 책 속에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따르는 성경은 과연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소요리 3문항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소요리는 두 가지의 내용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무슨 행동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등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의무를 기록하였습니다. 앞서 설명한 하나님에 대해 믿어야 할 내용을 다른 말로 교리(복음)라고 합니다. 그리고 후자를 윤리(율법)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내용은 교리(복음)와 윤리(율법)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A. 율법과 복음의 정의
이렇게 우리가 믿어야할 내용을 교리라고 부르고 우리가 행동해야 할 내용을 윤리라고 말하는데, 이것을 기독교적인 용어로 바꿔 보자면 복음과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복음은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는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선포하고 전해줄 때는 그 내용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믿고, 율법은 순종해야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은 다시 말하면, 복음 아니면 율법입니다. 이 복음과 율법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동해 주신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주셨다.’ 등등의 우리에게 행하신 사건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율법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항상 명령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 기도하라. 성경을 읽어라. 정직하라’처럼 우리에게 ‘하라’와‘하지 말라’로 명령하는 모든 내용은 율법입니다.
흔히들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두 권의 책 모두에서 우리는 율법과 복음 모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과 율법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행동하는가’가 중요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복음에 대해 하나 더 생각할 것은, 복음은 다시 두 가지 형식을 구분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복음과 신약에 담긴 복음은 형식상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은 약속의 형식으로 복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오면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켜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도 복음으로 분류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B. 율법의 최종적인 계명
그러면 이 율법의 내용이 성경에는 몇 가지 정도 기록이 되어 있을까요? 특별히 모세 오경을 율법서라고 부릅니다. 그 안에 율법가 가장 많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이스라엘의 랍비들이 이 율법서에 담긴 율법의 개수를 세어보니 613개가 나왔다고 합니다. ‘365가지의 하지 말라는, 나머지는 하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613가지의 율법의 내용을 우리가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열 가지고 요약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십계명이라고 부릅니다. 그 십계명의 내용도 두 가지로 요약 될 수 있는데‘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의 최종적인 내용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율법은 딱딱하고, 어렵고, 힘든 것으로 알고, 복음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분들은 사랑도, 율법도 모르는 분들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내용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것보다 더 거룩하고, 선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이 율법을 통해서 보여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쉽게 말하면, 이 율법은 하나님을 닮으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너희도 나를 닮아서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라 하는 것입니다.
a.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
그런데 여기까지는 율법의 내용이 좋긴 한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율법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온전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는 영생을 약속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 바로 율법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죄인들이 율법을 깨닫게 되면 ‘나는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기준은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완전하게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가 지켜보려고 할수록 우리는 안되는 것입니다. 만일 정말 일주일 동안 하나님을 내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려고 노력해보고,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를, 자식을, 부모를. 형제를 여러분의 직장 동료를 정말 내 몸처럼 한 번 사랑 하려고 해 본다면 우리는 초죽음이 되어 좌절과 낙담과 절망 속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 아니 하나님은 도저히 내가 이룰 수 없는 이것을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가!’라고 하나님께 삿대질을 하거나, ‘난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다’고 자포자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충대충 살다가 오기 때문에 매 주일 오전 예배 때마다 십계명을 읽을 때도 그게 별로 그렇게 충격적인 말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어차피 안 지키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높게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나에게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여러 가지 악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b. 율법의 완성자_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우리의 희망은 결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데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분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결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는 이 율법을 예수님은 완벽하게 지켜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는 기간 동안 행하신 일은, 율법에 대한 완벽한 순종이었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설교를 하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내가 하나님이 내가 하라고 말씀하신 율법을 다 지켰다’ 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율법의 완성자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완전히 지킬 때 영생을 주시겠다는 그 약속은 예수님께서 받아야 할 상입니다. 또한 율법을 지키지 못할 때 받는 사망의 저주는 우리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상을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받아야 할 상을 우리가 대신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형벌마저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표자로 삼으시고,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Good News)입니다.
C. 복음_ Good News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독특함은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이야기에 있습니다. 하니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것을 믿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이야기, 하나님의 구속이야기는 이 세상의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습니다.
'굿뉴스'의 헬라어 원어인 ‘유앙겔리온’은 승전을 알려주는 소식이 들려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가장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굿뉴스'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구원을 계획하시고, 약속하시고, 또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고 계시고, 장차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소식!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사단과 지옥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를 죄와 죽음과 사단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는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믿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반응으로서 율법을 지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율법을 다 완전히 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율법을 다 지킨 것으로 인정해 주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입니다.
맺음말
성경에 있는 복음과 율법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 사랑에 반응합니다. 그것이 곧 율법에 대한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 앞에는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고 말입니다. 복음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라면, 율법은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깊이 감격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반응인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복음을 믿고 있는가는 율법으로써 확인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이 고단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맛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힘이 생깁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힘,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복음을 복음답게, 율법을 율법답게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그 은혜로 하나님에 대한 더 큰 감사와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더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