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의 간을 빼먹자 편 내용입니다.
현존하는 벼룩은 약 2500여 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유동물부터 조류까지 다양한 동물들의 체외에 붙어 살아가는 대표적인 체외기생충 중 하나죠. 공룡시대부터 벼룩과 비슷한 곤충들이 거대한 도마뱀들의 피를 빨아왔습니다. 크기는 대체로 작은 편이라 2-3mm이지만 종과 상황에 따라 더 크게 자라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벼룩은 곤충이지만 날개는 없습니다. 보통은 짙은 적갈색이죠. 성충은 암수 관계 없이 모두 피를 빨며 살아가고, 애벌레는 보통 둥지나 집 바닥에서 살아갑니다. 피부조각이나 음식찌꺼기 등도 먹지만 벼룩 성충이 흡혈을 하고 떨어뜨리는 배설물을 주 영양원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렇듯 유충이 주로 바닥에서 생활하는 특성 때문에 진공청소기의 발명이 벼룩을 없애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집안에서는 벼룩을 비교적 찾아보기 어려워졌지요.
벼룩의 몸은 양옆으로 납작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숙주에 기생하기 쉽도록 적응한 결과입니다. 벼룩의 몸에는 마디마다 뻣뻣헌 털들이 뒤쪽 방향으로 나 있는데, 이 벼룩의 털이 숙주의 털에 엉켜 쉽게 빠지지 않게 됩니다. 더불어 납작하고 긴 몸통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도 않지요. 벼룩의 몸통 두께는 주로 기생하는 숙주의 털 간격과 비슷하게 진화해 왔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털 간격에 딱 맞춘 두께라 더 잘 빠지지 않게 되는거죠. 크게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벼룩은 사람벼룩, 쥐벼룩, 고양이벼룩, 개벼룩 등이 있습니다. 물론 이 숙주들에서 주로 발견되서 이런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벼룩은 개 고양이 사람 쥐를 가리지 않고 무는 편입니다.
벼룩의 종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기생 방식 역시 종에 따라 굉장히 다양합니다. 어떤 종은 숙주의 몸 위에서 평생 동안 살면서 알부터 성충까지 한살이를 다 몸 위에서 보내는 종도 있는가 하면, 숙주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다른 숙주로도 손쉽게 옮겨가는 녀석들, 둥지나 바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흡혈시에만 숙주로 올라가는 종들, 모래벼룩처럼 아예 숙주의 몸 안으로 파고 들어가 흡혈를 하며 꽁무니만 내놓고 알을 생산하는 종까지 있습니다. 이 모래벼룩은 완두콩 크기 정도까지도 커질 수 있죠.
벼룩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점프력입니다. 독일에는 곤충학자가 만든 벼룩의 점프력을 이용한 벼룩 서커스단도 있지요. 일전에 bbc 뉴스에 유럽에 갑자기 불어닥친 강추위로 서커스단이 몰살당했다는 슬픈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벼룩은 최고 33cm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데요, 이는 동물계에서는 몸길이 대비 최고의 점프 실력입니다. 사람에 비교해서 이야기 하자면 243미터를 뛰어오른 것과 비슷합니다. 63빌딩 높이가 249미터라고 하지요. 벼룩의 가느다란 다리로 어떻게 이런 점프가 가능한가 하면 단지 근육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레실린이라는 특이한 단백질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물질 중 탄성이 가장 좋은 물질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일반적인 고무줄이 늘어난 상태에서 원래 상태로 돌아올 때 85% 정도의 에너지를 다시 내놓는데 반해 레실린은 97%에 가까운 반환율을 보여줍니다. 그럼 착지는 어떻게 하냐구요. 착지 메커니즘은 따로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착지라기 보다는 추락이나 충돌에 가까운 모습이죠.
어떤 학자는 벼룩이 세상의 모든 폭군들과 독재자들이 해온 파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벼룩이 옮기는 다양한 질병들 때문인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세 전세계를 암흑으로 몰아 넣었던 흑사병입니다. 쥐에 잠복하고 있던 흑사병균이 쥐벼룩을 통해 인간으로 넘어와 대유행이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요. 14세기 유행 당시 약 25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유럽 전체 인구의 1/4에 달했죠. 흑사병은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전파되는데 박테리아가 벼룩의 소화기에서 번식하면서 플라크를 형성해 목구멍을 마개로 막아버리는 듯한 형태가 됩니다 결국 벼룩이 다음에 피를 빨때 뱃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박테리아만 씻어낸 후 다시 토해내게 되지요. 쥐벼룩이 특히 흑사병 전파에 유용했던 이유는 목구멍이 더 쉽게 막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흑사병 뿐만 아니라 촌충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애벌레 시절 바닥에서 살면서 바닥에 떨어진 촌충 알을 먹으면 벼룩 안에서 촌충 유충이 자라납니다. 이 벼룩을 동물의 경우에는 그루밍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경우에는 우연히 먹게 되어 촌충이 감염되지요.
질병 전파 이외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간지럼증입니다. 물린 모양은 모기와 상당히 흡사한데 훨씬 더 간지럽고 흉터도 오래가지요. 또한 최근에는 비교적 적어졌지만 그래도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에서의 벼룩 감염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벼룩의 방제는 벼룩 자체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 바닥에 잔류하고 있는 애벌레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주변 환경을 잘 청소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집 안이라면 충분히 진공청소기를 돌려 애벌레를 방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약물로는 지난주 심장사상충 치료에 사용되었던 레볼루션이 벼룩을 비롯한 다양한 체외기생충에 효과가 있습니다. 집 안에 다량의 벼룩이 생겼을 때는 바퀴벌레와 비슷하게 연막살충제를 터뜨려 방제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살충제 이용이 꺼려지시는 분들이라면 베이킹 소다와 고운 소금을 섞어 뿌려 벼룩과 애벌레를 말려 죽이는 방법도 있지요. 물론 다시 진공청소기로 빨아 들여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다른 체외기생충들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어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속담도 남아 있지요. 그 작은 곤충에 간을 빼먹는 악독한 행동을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 벼룩은 간이 없습니다. 곤충들은 간이 없는 대신 지방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인간의 간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지요. 그러니 사실 벼룩의 있지도 않은 간을 빼먹은 사람은 얼마나 악독한 사람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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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이, 모기 민담
제1유화인 〈물것들의 싸움〉은 가장 단순한 내용의 것으로서, 이와 벼룩과 빈대가 싸움을 벌인 결과, 빈대는 눌려 납짝하게 되고, 이는 채어 멍들었으며, 벼룩은 뺨을 맞아 주둥이가 뾰족해졌다는 것이다.
제2유화는 〈빈대의 환갑잔치〉이다. 빈대의 환갑잔치에 이와 벼룩이 초대를 받았다. 날쌘 벼룩은 먼저 뛰어가서 기다렸으나, 굼뜬 이는 좀처럼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빈대가 이를 맞이하러 나간 사이에 벼룩은 참다 못하여 준비해 두었던 술을 혼자서 다 마셔 버리고 새빨갛게 되었다.
뒤 늦게 도착한 이가 골을 내어 벼룩에게 달려들어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둘을 말리려던 빈대는 사이에 끼어 납짝해졌고, 이도 등을 걷어채어 퍼렇게 멍이 들었다.
제3유화는 〈물것들의 글짓기내기〉이다. 이와 벼룩과 모기가 모여 글짓기를 하기로 하고 빈대를 시관(試官)으로 정하였다. 벼룩이 “팔짝 장판방(壯板房 : 팔짝 장판방에서 뛰니) 단견일지인(但見一指人 : 다만 한 손가락의 사람만 보도다.)”이라고 지으니, 이는 “슬슬 요간거(腰間去 : 슬슬 허리 사이로 가니) 불견정구인(不見正口人 : 입이 바른 사람을 보지 못한다.)”이라고 짓고, 모기는 “왱왱 이변과(耳邊過 : 왱왱 귓가로 지나가니) 매견타협인(每見打頰人 : 매번 뺨을 치는 사람을 본다.)”이라고 지었다.
빈대가 모기를 장원으로 뽑자 이와 벼룩이 골을 내고 달려들어 싸움이 벌어졌다. 그 때부터 빈대는 눌려 납짝하게 되고, 모기는 다리가 늘어나 길게 되었으며, 벼룩은 주둥이가 뽑혀 뾰족하게 되었고, 이는 걷어채어 까맣게 멍들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