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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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 명의 매튜라는 이름의 사람들을 알고 있다. 둘은 서로에 대해 모르고 공통점도 없지만 이름이 같다. 내가 만약 두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두 사람의 이름이 같다라는 단순한 사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그들은 어떤 기분일까. 그게 이야기의 끝이라면 아마도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분명 무엇인가 이야기가 더 있지만 살짝 약만 올려놓고 침묵해버리는 것이 듣고 싶은 사람으로서는 부당한 느낌일 것이다.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자.

두 명의 매튜지만 성은 다르다. 한 명은 베컴이고 다른 한 명은 리프이다. 이름의 중요한 기능은 그 이름을 가진 것과 외부세계를 구분한다는 것이다. 구분은 연상을 돕는다. 그리고 상상하게 한다. 구분과 상상. 이것들이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풍요롭게도 시들게도 하는지 모른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언어 활동으로만 제약되지는 않는 것 같다. 말이 없는 개미나 벌 들도 화학적인 방식으로 대상에 이름을 붙이니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회 활동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갑자기 이 세상에 혼자만 남아 주변이 완벽한 무의 영역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의 냄새도 맛도 시각도 촉각도 느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생각하고 어떤 것을 구분해내어 이름을 부를테니까.

다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고 활동 중 하나이고 언어와 언어를 매개로 타인과 교류하는 사회 활동에 완벽히 독립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이전에는 이름이 없던 새로운 대상이 나타나면 우리는 이름을 붙여준다. 우리가 모르는 대상이 있을 때 그것의 이름을 알게되면 우리는 이름이라는 폴더에 그 사람의 특징을 하위 폴더로 생성하는 것 같다. 그 하위 폴더가 사람끼리는 거의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가 없으므로 하위 폴더의 크기나 수가 그 사람을 정의해준다.

개념화라는 방식으로 대상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컨셉트라는 단어에서 셉트는 뭔가를 자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개념화 작업이란 대상을 분류하기 위해 과격하게 잘라내어 표준화한다. 그렇게 표준화된 개체의 속성은 고유성을 잃지만 일반성을 획득하며 타인과 소통의 첫 걸음을 띈다.

우리는 모든 경우에 이 잘라진 부분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대부분 쓸모 없고 대상을 잘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잘라진 것이 본질을 잘 표현해주기도 한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지만 그것이 실체의 전부라는 착각을 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편의상 붙인 이름은 사실 이 세상에 실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이고 사람들의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개념을 통해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감동스럽긴 하지만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편의상 사용하는 언어를 되도록 정교하게 사용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일종의 태만이고 거짓말이 아닐까.

표현과 의미를 모두 갖추는 것.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묘미이기 어려움이고 즐거움이다. 

 

 

 

 

 

 

 여기서 생각이란 고도화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은 언어와 개념 없이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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