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초에 주먹다짐을 했다. 그러다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막대기나 도끼를 들었다. 점점 더 큰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힘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 있는데, 바로 거리다. 무기의 역사란 물론 힘의 역사지만, 동시에 거리의 역사다. 강한 힘은 자기 자신도 파괴한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참상은 필연적으로 죄의식을 수반한다. 그래서 힘을 실어나르는 컨테이너는 주먹에서 발차기로, 손도끼에서 화살로, 총알에서 미사일로 진화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살해행위와 살의간의 거리다. 군인은 단지 명령에 따라 살해하고, 명령권자는 단지 지령만 내리면 되는 것이다. 죄의식을 분산하기 위한 관료주의 클러스트링이 구축된 것이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원자폭탄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을 집행하기엔 지구가 너무 작고 둥글다. 이제 인간에겐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제한된 공간이 문제다. 둥근지구. 참 오묘한 하늘의 섭리다.